- 산행山行이야기

[서울] 인왕산(仁王山,338m)

安永岩 2014. 1. 18. 12:38

 

인왕산(仁王山,338m)

 

 

우리가 살아 가면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인가 봅니다

그저 동네 뒷산 정도인 인왕산을 이제사 찾게되고 보니 그러한 생각이 더 드네요

불과 2,3시간 정도면 한바퀴 돌아 내려 오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인왕산은 높이에 비해서 그 의미가 너무나 큰 아주 중요한 산입니다.

함흥출신인 이성계는 개성의 왕족과 오래된 터세를 하는 귀족들이 눈에 까시였기 때문에

새로운 나라를 열면서 그들의 권세를 약화시킬 목적으로 개경을 떠나야 하는데 새로운 도읍지로

서울 북악산 아래를 선택하게 되지요.무학대사가 가만히 보니 북악산 아래 좌청룡 우백호 앞에 면산(남산)까지

있으니 천연의 요새로 적으로 부터 침략을 막을 수 있는 천하의 명당 자리에 경복궁을 짓고 수도를 천도합니다.

그 우백호가 바로 인왕산입니다.

그만큼 예로부터 신성시 해온 산이기 때문에 민간인들의 접근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지요.

나는 왜 인왕산이 그렇게 중요했는지 산에 올라 보고 싶었는데 지방에 살다 보니 마음대로 되지 않터이다.

해서 이번에 서울에 온김에 작정하고 인왕산을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충분히 알 곳 같았습니다.

인왕상 정상에서 보니 과연 적의 침략으로부터 방어 할 수 있는 천연의 요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악산,낙산,인왕산,남산을 연결한 튼튼한 성곽을 둘러 쌓으므로써 500년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재래식무기(활,창)로 싸우던 때까지 말입니다.

한나라의 수도는 넓은 터만 있다고 해서 되는게 아닌가 봅니다.

험악한 산새가 사방으로 둘러 쳐지고 가운대로 江이나 川이 흐르고 사통팔통 교통이 편리하고

따스한 남향의 地勢라야 했는가 봅니다.

그러한 조건을 갖춘게 바로 지금의 경복궁 자리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서울의 진산,북한산,도봉산,관악산보다도 더 신성시 한 산였습니다.

338m의 나즈막한 산이 결코 낮지만은 않은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왕산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을 보니 그러한 역사는 500년을 넘어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네요.각설하고~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죄송^^

우째든 인왕산을 오릅니다.함께 가시죠?

 

 

먼저 사직공원에서 출발합니다.

종로나 광화문쪽에서 접근성이 좋기 때문입니다.

 

사직공원은?

인왕산 남동쪽 기슭에 사직단(사적 제121호)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총면적 0.19㎢. 태조가 한양 천도 이후 첫 사업으로 '우사좌묘의 원칙',

 즉 경복궁의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짓고 왼쪽에는 종묘를 짓는다는 원칙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사직단을 건립했지요.

사직단은 토지신.곡물신께 제사를 지내고

종묘는 역대의 왕을 모신 곳으로 선대의 왕을 기리는 제사를 지네지요.

 

 

     사직단 (사적 제121호)

 

 

   사직단 뒷편에 이율곡과 신사임당의 동상이 있으며

   뒤에 보이는 산이 인왕산입니다.

   율곡 이이선생동상 좌측 계단으로 올라 갑니다.

 

 

   좌측 계단을 따라 오르면 민족의 시조 단군을 모신 '단군성전' 있습니다.

   참배하고 계속 오릅니다.

 

 

 

  인왕산 순환 둘레길을 따라 한참가면 조선의 국궁 제 1번지로 불리는 활터 '황학정黃鶴亭'이 우측으로 나타 납니다.

  황학정黃鶴亭은 서울 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25호로 지정되어 있고 매년 활쏘기 대회를 이곳에서 열고 있답니다.

 

 

 

 

 

 

 

   황학정에서 조금 더 오르면 길 반대편 철조망 사이로 오르는 산길이 열리는데

   그리로 들어 서서 산허리를 가로 질러 오르면 만나는 성곽길입니다.

   이 후 정상까지 내~다지 성곽길이 이어 집니다.

 

 

 

 

 

 

 

 

 

 

 

   인왕산의 성곽은 대부분 최근에 복원한 성곽입니다.

   옛 것이 남은 아랫부분 위에 새로 올린 성곽입니다. 

   우선 그 규모에 놀라고 돌을 일일이 쪼아 만들었다니~

   그 노고가 엄청나서 꼭 이렇게 복원해야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더구나 현대戰에서 말입니다.

 

 

성곽을 따라 올라 가면서 구멍으로 본 선바위모습

 

 

   인왕산은 성곽을 따라 올라 갑니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계속 서울시 전경이 함께 합니다.

 

     범바위에서 본 인왕산 정상 거대한 암벽모습

 

   역시 성곽이 정상까지 이어 지고 있네요

   서울성곽길은 내사산(북악,인왕,낙산,남산)과 4소문(혜화,광희,소의,창의문)으로 이어진 21km의 긴 역사,문화탐방로입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로 부터 사랑 받는 길입니다.

   저는 쪼개서 하고 있지만 한번에 도전해 볼만 합니다.

 

 

정상가는 바위길을 일일이 쪼아서 홈을 만들었네요

 

 

   정상오르면서 돌아 본 범바위 모습입니다.

   곳곳에 전경들이 보초를 서고 있어 괜히 마음이 위축되네요

   그리고 사진찰영도 마음대로 안되고~

   하기사 여기에는 잊지말아야할 아픈 역사가 있지요.

   김신조무장공비사건입니다.

   그 날 이후로 북악,인왕산은 입산금지되었다가

   1993년에 일부 개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올라 보니 서울시가 바로 코 앞입니다.

 

 

   멀리 남산타워가 미세먼지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네요

 

 

 

 

 

   가운데 경복궁이 선명합니다.

 

 

 

 

 

 

   비교는 안되지만 꼭 만리장성같네요

   올라 온 길,뒤돌아 보고~

 

 

 

 

 

 

 

 

정상 못 미처에서~

이 날은 드물게 따스한 날 였습니다.

 

 

   정상 부근 암반입니다.

 

 

   인왕산 정상

 

 

 

오늘 오른 코스는

사직공원,황학정,범바위,정상,기차바위(뒤돌아)

다시 정상,범바위.성곽갈림철망문,선바위,인왕사입구,독립문

시간은 2,3시간이면 충분

* 원래는 부암동으로 내려 갈려 했으나 그리로 보다는

정상으로 해서 한번 더 서울경치를 보고,  선바위도 보고,

서대문형무소도 보고,독립문도보고,보고 보고~ㅎ

 

   정상부에 새로 쌓은 성곽

 

 

   유명한 기차바위입니다.

   저 아래에서 보면 꼭 기차머리부위 같다고 하네요

   멀리 북한산의 비봉 형제봉들의 위용이 자못 웅장합니다.

 

 

 

 

 

 

 

 

   홍제동쪽입니다.

 

 

 

 

 

   기차를 타고 내려 가는 부부모습

 

 

   내려 와서 쳐다 본 기차바위길

   인왕산에서 또 다른 거대한 암벽입니다.

   그리고 보니 인왕산은 거대한 암석과 암벽으로 된 산입니다.

   그 사이로 길이 있고~ 경치 시원하고~

 

 

   이러한 정감이 가는 솔길도 있습니다.

 

 

 

   우측이 정상 암벽모습입니다.

 

 

   기차바위 뒷 모습

 

 

 

 

 

   의외의 솔 숲이 좋아서~ㅎ

 

 

 

부암,홍제동으로 갈라지는 지점

이 곳에서 빽하여 다시 정상으로 갑니다.

 

 

 

   기차바위 일명 눈섭바위 위에서

   애처롭게 자라고 있는 어린 소나무 한그루

   어떻게 살아 갈까?

 

 

   다시 눈에 담고~

 

 

   기묘하게 생긴 바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선바위쪽으로 내려 가는데 예상외로 기기묘묘바위가 많습니다.

 

 

   모자바위

 

 

 

   그리고...곧 떨어질 것 같은 저 바위 덩어리가 위태롭네요

 

 

   해골바위 너머로 북악,성곽길,그리고 서울 하늘...

 

 

   서울시내 빌딩과 성곽길...

 

 

 

그 유명한 선바위(禪岩)

 

이 바위는 아이를 갖기 원하는 부인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많이 하여 '기자암(祈子岩)이라고 불립니다.

바위의 모습이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 참선한다는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고 불립니다.

이 바위가 태조와 무학대사의 像이라는 설화와 태조 부부의 상이라는 설화가 전합니다.

일제가 남산에 있던 國師堂을 이 바위 곁으로 옮긴 뒤부터는

이 바위와 국사당이 함게 무신(巫神)을 모시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옛 문헌에는 조선 태조 때 한양으로 천도할 무렵 선바위에 관한 설화가 전합니다.

즉 한양 도성을 쌓을 때 무학대사는 선바위를 도성 안에 둘 수 있게 설계하려 하였고,

정도전(지금 TV에서 주말드라마로 인기리에 방영)은 성 밖에 두도록 설계하려 했었다고 합니다.

정도전이 선바위를 도성 안에 들이면 불교가 성하고 도성 밖에 두면 유교가 興할 것이라고 태조를 설득하여

결국 도성 밖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무학대사가 탄식하며

"이제부터 승도들은 선비들의 책 보따리나 지고 따라 다닐 것이다"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인왕산을 볼 때면 이 바위가 가장 눈에 띄는데 조선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바위를 인상깊게 보았다는 것이 이 설화에도 잘 나타나고 있네요.

선바위는 서울시 민속자료 제4호로 지정되어 보호 되고 있습니다.

 

 

 

 

 

 

 

 

   인왕사입구

 

    일제 강점기 때 저 일본 놈들이 임금王자 대신 성할旺을 썼다가 해방 후

   다시 원래대로 임금왕(王)을 써서 仁王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네요

   인왕사를 내려서서 서대문형무소,독립문을 보면서

   일제치하에 온갖 만행을 저지런 뼈골이 쑤시는 아픈역사의 현장을 보고 나서

   이 글을 써니 더욱 더 화가 치밀어서요.

 

    산행을 마무리 하고 수원으로 갑니다.

    화성을 볼려고요,아니 孝性의 수도 수원,정조의 발자취를 따라서~ 하는게 맞겠지요

    블친 여러분,아름다운 나날이 되시기를~

                                                            좋은하루